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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기고 / NA:NNAL STORIES

북한의 '100년 한길', 그런데 통일은 없었다

타도제국주의동맹 100주년 기념 보도를 읽으며, 북한이 계승한다고 밝힌 혁명의 과업에서 남북통일이 빠진 의미를 살핍니다.

북한 <노동신문>이 타도제국주의동맹 결성 100주년을 앞둔 지난 14일, 1면에 실은 글에는 '한세기와 한길'과 '위대한 새시대'라는 두 소제목이 등장한다. 신문은 김정은 시대에 전례 없는 변화가 일어났다고 강조하면서도, 조선혁명은 100년 동안 한길을 걸었다고 주장했다. 크게 달라졌다는 현재와 변하지 않았다는 혁명의 진로를 한 글에서 함께 설명한 것이다.

그런데 이 혁명의 100년을 되짚는 글에서 눈에 띄는 것은 남북통일이라는 과업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타도제국주의동맹은 북한이 김일성이 1926년 10월 17일 결성했다고 설명하는 조직으로, 북한에서는 'ㅌ.ㄷ'로 줄여 부른다. 노동당과 주체혁명의 뿌리로 기념하는 이 조직의 결성 100주년을 맞아 노동신문은 이날 1면 기념 글과 3면 중앙연구토론회 보도를 실었다. 두 글은 항일투쟁에서 시작한 혁명이 오늘의 국가 건설로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설명한다.

1면 기사에는 두 소제목의 관계를 풀어주는 문장이 있다. "매 단계에서의 조건과 환경, 시대적요구는 서로 달랐어도 주체혁명의 년대와 년대들에 제시된 로선(노선)과 정책들의 근저에는 'ㅌ.ㄷ'의 리념이 놓여있었다"는 대목이다.

현실의 조건과 그에 대응하는 정책이 달라도 추구하는 목적은 이어진다는 뜻이다. 북한이 말하는 '한길'의 기준은 각 시기의 정책이 똑같았는지가 아니라, 그 정책을 어떤 이념의 실현으로 설명하느냐에 있다.

이러한 논리는 김정은 시대의 성과를 설명하는 대목에서도 나타난다. 노동신문은 핵무력 강화를 국가의 자주권을 보장하는 힘으로, 지방발전과 주민 생활 개선을 사회주의의 혜택을 전국에 확대하는 과업으로 설명한다. 서로 성격이 다른 정책들을 자주와 사회주의라는 목표 아래 묶음으로써, 오늘의 국가 건설을 혁명 초기부터 이어진 노선의 실현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새 정책과 오랜 이념을 연결하는 주체는 현 지도자다. 기사는 "수령의 위대성은 변화발전하는 주객관적환경속에서 혁명이 나아갈 진로를 정확히 밝혀주는데 있다"고 썼다. 계승은 선대의 구체적인 정책을 그대로 반복하는 일이 아니다. 김정은은 달라진 환경에 맞춰 새로운 진로를 제시하고, 이를 선대의 이념을 실현하는 길로 정당화할 수 있다.

'100년 한길'에서 사라진 남북통일

문제는 이러한 혁명의 연속성에 남북통일이 포함돼 있는가 하는 점이다. 김정은은 2023년 말 당 전원회의에서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로 규정했다. 2024년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는 헌법의 '평화통일', '민족대단결' 등의 표현을 삭제하라고 지시했다.

선대가 내세웠던 통일 노선에서 벗어나 대남정책의 방향을 전환한 것이다. 그렇다면 혁명의 100년을 기념하는 글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어떻게 설명될까.

이날 노동신문 1면 기념 글과 3면 토론회 보도에는 조국통일을 미래의 과업으로 제시한 대목이 없다. '남조선', '한국', '대한민국'도 등장하지 않는다. 1면에서 통일은 '사상과 행동의 통일체', '행동통일'처럼 내부의 단결과 지휘를 뜻하는 표현으로 쓰였다. '조국'과 '민족'이라는 말은 남아 있지만, 주로 '조국해방', '민족해방' 등 혁명의 출발을 설명하거나 현재 지켜야 할 '사회주의조국'을 가리키는 데 사용됐다.

민족해방에서 시작한 역사를 길게 되짚으면서도, 앞으로 완수해야 할 과업으로 남북통일을 제시하지 않은 것이다. 두 글은 이 노선 전환을 혁명의 계승과 어떻게 조화시킬지 설명하지 않는다. 핵무력 강화와 지방발전은 자주와 사회주의라는 목표 아래 혁명사에 넣고, 통일 노선의 변화는 거론하지 않는 방식으로 '100년 한길'을 서술한다. 연속성은 과거의 모든 과업을 빠짐없이 이어가는 데서 확보되는 것이 아니다. 현재 강조할 과업을 골라 혁명 초기의 이념에 연결함으로써 만들어진다.

사회주의를 중심에 놓는 설명은 국제관계를 다루는 대목에서도 나타난다. 이날 3면 보도는 노동당이 "공평하고 정의로운 다극세계건설의 중심에서 력사적사명을 다하고있으며 '공산주의로 가자!'는 구호를 높이 들고" 이상사회를 실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의 다극세계 건설과 오래된 공산주의 목표를 한 문장에 놓은 것이다.

이는 올해 북중이 각자의 발전과 양국 협력을 설명한 방식과 비교해볼 만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방북 당일인 6월 8일 <노동신문> 기고에서 중국공산당과 조선노동당을 모두 마르크스주의 집권당으로 규정하고, 각국 실정에 맞는 사회주의의 길을 서로 지지하자고 했다.

중국 외교부가 7월 11일 공개한 북중 우호협력상호원조조약 65주년 축전 교환 소식에서도 김정은은 사회주의를 핵심으로 하는 양국 관계를 시대 변화와 두 나라 인민의 요구에 맞게 발전시키겠다는 뜻을 밝혔다.

북중 양측은 공통의 사회주의 이념을 관계의 중심에 두면서도 구체적인 발전 경로와 협력 방식은 시대에 맞게 조정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는 김정은 시대의 새로운 정책을 혁명 이념의 실현으로 서술하는 <노동신문>의 논리와도 맞닿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교만으로 남북통일 노선의 변화까지 설명할 수는 없다.

한국에서 이 '100년 한길'을 읽을 때는 무엇이 계승의 대상으로 남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선대를 계승한다는 선언만으로 선대가 내세운 모든 과업이 이어진다고 볼 수는 없다. 두 기념 글이 현재와 미래의 과업으로 강조한 것은 자주권 수호, 사회주의 국가 건설, 반제투쟁과 다극세계 건설이다. 북중 관계에서는 공통의 사회주의 이념이 오늘의 협력을 설명하는 근거로 쓰이지만, 남북통일은 이 혁명 100년의 과업에서 언급되지 않았다.

북한은 혁명의 연속성을 강조하지만, 그 연속성을 구성하는 내용은 선택적으로 제시한다. 무엇을 계승한다고 선언하는지만큼이나 무엇을 더 이상 미래의 과업으로 말하지 않는지도 살펴야 하는 이유다.

북한이 말하는 '100년 한길'은 과거의 모든 목표가 그대로 이어졌다는 뜻이라기보다 현재의 노선을 혁명 초기의 이념과 연결해 정당화하는 서술에 가깝다. 그 서술에서 통일이 빠진 사실은 북한의 대남 노선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판단할 때 놓쳐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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