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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엔 평화, 호르무즈엔 군사력... 우회파병 길 닦나

유엔 연설의 한반도 평화 구상과 국제 해협 협력 제안을 함께 읽으며, 청해부대 임무 확대가 군사개입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따집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북미대화 재개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촉구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를 우선 중단하고, 중기적 축소를 거쳐 장기적으로 핵 없는 한반도로 나가겠다는 단계도 제시했다.

이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81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대한민국은 오랫동안 멈춰 있던 북미대화가 조속히 재개되고, 한반도 전쟁 종식과 평화체제 전환을 위한 당사자 간 대화로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반도 평화공존의 방향으로는 서로의 체제를 존중하는 포용적 평화공존, 소통 채널을 복원하는 안정적 평화공존, 전쟁과 핵 없는 한반도를 지향하는 책임 있는 평화공존을 제시했다. 한국의 역할은 한반도 평화의 "당사자이자 페이스메이커"로 규정했다.

연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회담을 이틀 앞두고 나왔다. 두 정상은 24일 백악관에서 만날 예정이다. 북한 문제가 공식 의제로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미중 정상의 논의는 향후 한반도 정세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대화 재개도 요청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으로 변화의 가능성이 어렵게 만들어지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북미대화가 종전과 평화체제 전환을 위한 당사자 간 대화로 발전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반도 정책의 순서

이번 연설은 정부가 그동안 제시한 한반도 정책을 하나의 순서로 묶었다. 북미대화를 재개하고, 평화체제를 논의하면서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를 멈춘 뒤 능력을 축소해 핵 없는 한반도로 나아간다는 구상이다. 비핵화를 마친 뒤 평화를 논의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평화체제 구축 과정에서 핵 위험을 줄이겠다는 정부 입장을 유엔에서 공식화했다. 남북의 상호 체제를 존중하고 차이를 인정한다는 원칙도 국제사회에 다시 확인했다. 연설문에는 '북한 비핵화' 대신 '핵 없는 한반도'라는 표현이 담겼고, '통일'은 등장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이 한국을 한반도 평화의 "당사자이자 페이스메이커"라고 규정한 것은 북미가 대화를 주도하더라도 한국이 평화체제 논의에서 빠지지 않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세 가지 평화공존 원칙과 핵 능력의 중단·축소 구상은 앞선 광복절 경축사와 통일정책 발표에서 이미 제시됐다. 이번에는 이를 대통령의 유엔 연설로 끌어올리고, 미중회담과 향후 북미대화에 앞서 한국의 원칙과 역할을 밝혔다.

실행 조건은 채워지지 않았다. 연설에 앞서 공개된 미국 언론 인터뷰에서 이 대통령은 북한의 추가 핵무기 및 대륙간탄도미사일 기술 개발 중단과 제재완화를 교환하는 방안을 거론했다. 유엔 연설에서는 제재완화를 뺐다. '핵·미사일 고도화 중단'의 범위와 검증 방식, 북한에 제공할 상응 조치도 밝히지 않았다. 이번 연설은 한국의 출발점을 제시했지만 북한과 미국이 주고받을 조건까지 담지는 않았다.

한반도 대목이 앞으로 있을 정상외교에 대비한 입장 표명이었다면, 호르무즈 대목은 당장 한국 정부의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성격이 달랐다.

이 대통령은 호르무즈해협과 홍해의 봉쇄를 거론하며 "국제 해협의 자유롭고 안전한 통항은 국제법이 보장하는 권리"라고 말했다. 상선을 공격하고 선원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글로벌 공공재를 제공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 나라들이 먼저 협력하는 '건설적 기여국 연대'를 제안했다. 정식 국제기구를 세우지는 않지만, 참여 의사가 있는 국가들이 가능한 분야부터 움직이자는 구상이다.

북한과의 신뢰 쌓기

이 대통령은 국제에너지기구를 활용한 공급망 협력을 먼저 언급했다. 협력 범위는 정하지 않았다. 안전한 통항과 상선 보호를 명분으로 청해부대 작전구역을 넓히거나 군사자산을 추가로 보내는 방안도 이 안에 들어갈 수 있다.

정부가 앞서 내놓은 발언과 검토 내용도 이런 우려를 키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4일 한국 정부가 호르무즈해협의 항행 자유를 지원하기 위한 군사적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해상초계기와 군수지원함, 기뢰 탐지·제거 전력 등이 선택지로 거론됐다. 청와대는 군사적 방안도 검토 대상이라고 확인하면서 파견이 결정됐다는 보도는 부인했다.

이 대통령은 18일 기자회견에서 "전쟁의 관여 또는 개입은 없으며, 그런 형태의 파병이나 군 자산 파견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 상선과 원유 수송로를 지키기 위한 청해부대 활동 강화는 검토하고 있다고 인정했다. AP통신에 보낸 서면 답변에서도 아덴만에 파견된 해군 부대의 작전 확대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나흘 뒤 유엔 연설에는 안전한 통항, 글로벌 공공재, 건설적 기여국 연대가 등장했다. 국내에서는 상선과 원유 수송로 보호로 설명하고, 국제사회에서는 항행의 자유를 위한 다자 협력으로 제시했다. '건설적 기여'라는 표현은 청해부대 확대와 별도 군사자산 파견까지 포괄할 수 있다.

현재까지 군사자산 파견이 결정됐다는 발표는 없다. 건설적 기여국 연대가 비축유 공조나 민간 선박 정보 공유에 머문다면 군사 활동으로 볼 이유도 없다.

청해부대의 작전구역을 호르무즈까지 넓히거나 별도의 군사자산을 보낼 경우에는 군사개입 여부를 따져야 한다. 기존 부대의 임무 확대라는 형식을 취하더라도 분쟁 해역에 한국 군사력을 투입하는 일이다. 새 자산을 파견하거나 임무를 크게 바꾼다면 국회의 동의 절차도 거쳐야 한다.

정부는 전투 임무와 상선 보호를 구분할 수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현장에서는 그 경계가 쉽게 무너진다. 지금의 호르무즈에서는 미국과 이란이 실제로 무력을 사용하고 있다. 군함 호송이나 기뢰 제거도 공격받는 순간 교전으로 바뀐다. 해상초계기가 수집한 정보를 미국 측과 공유하면 상선 보호와 미군 작전 지원을 구분하기도 어려워진다.

호르무즈해협은 한국의 원유 수입과 국민 안전이 걸린 곳이다. 정부가 먼저 해야 할 일은 휴전과 협상을 요구하고, 당사국과 한국 선박의 안전을 직접 협의하는 것이다. 에너지 수급과 민간 선박 보호 대책도 군사작전과 분리해야 한다.

한반도 정책과 호르무즈 문제는 지역도, 직접 당사자도 다르다. 북한이 두 사안을 별개로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다. 북한은 한미동맹과 한미일 군사협력, 대북제재, 미국의 다른 지역 군사행동을 하나의 적대정책으로 묶어 비판해 왔다.

한국 대통령은 유엔에서 북한의 체제를 존중하고 평화가 먼저라고 말했다. 같은 연설에서 미국과 이란이 무력을 사용하는 해역에 군사 참여로 이어질 수 있는 협력 구상도 내놨다. 정부가 청해부대의 임무와 작전구역까지 넓힌다면 북한은 이를 한국의 독자적인 평화 의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북한의 주장과 별개로 한국 정부의 원칙도 따져야 한다. 한반도에서는 군사적 압박보다 대화를 앞세우면서 중동에서는 미국의 요구에 따라 군사자산 파견을 검토할 수는 없다.

이 대통령은 북한과 신뢰를 쌓으려면 상호 양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호르무즈에서도 군사적 압박을 거들기 전에 휴전과 협상을 요구해야 한다. 한반도에서는 평화체제를 앞세우면서 중동에서는 청해부대 확대와 군사자산 파견을 준비한다면, 북한이 한국 정부의 평화공존 구상을 믿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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