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기고 / NA:NNAL STORIES
북한에 '퍼줬다'는 말이 놓치는 기록
강동군병원 의료장비 지원 논란을 출발점으로, 지원의 검증 문제와 남북 교류의 지속성을 나누어 보고 준비된 협력 통로의 의미를 묻습니다.
20일 보도된 통일부의 국회 제출 자료에는 평양 강동군병원 의료장비 지원계획이 담겼다. 정부는 엑스레이와 수술대, 제세동기, 인공호흡기 등 166종 1431개를 지원 대상으로 골랐다. 예상액은 675만 달러, 약 93억 원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위원회의 제재 면제는 지난 5월 받았지만, 북한이 받겠다는 의사를 보인 것은 아니다. 품목과 운송, 실제 사용 방식은 남북 협의가 있어야 정해진다.
국회에서는 반대가 나왔다. 강동군에 북한 군수공업을 관장하는 제2경제위원회가 있다는 점을 들어, 일부 장비가 생화학무기 개발·생산에 전용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받지도 않는 상대에게 왜 먼저 선물을 안기느냐"는 반응도 뒤따른다. 북한에 너무 많이 주고 저자세로 나갔기 때문에, 오늘의 북한을 우리가 키웠다는 오래된 이야기다.
장비 전용 가능성, 제재 준수, 현장 확인은 지원 여부를 판단할 때 엄격히 따져야 한다. 병원 장비라 해서 자동으로 인도주의 지원이 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과거의 식량·비료·의료 지원이 북한의 핵무력 고도화와 대남 단절을 낳았다는 주장은 별도의 설명을 요구한다. 어떤 지원이 어떤 경로로 북한의 핵개발에 쓰였고, 그것이 지금의 단절 정책으로 이어졌는지를 보여야 한다.
한국 쪽 기록에는 다른 장면이 더 뚜렷하다. 금강산 관광은 1998년 시작됐다가 2008년 관광객 피격 뒤 멈췄다. 천안함 사건 뒤 2010년 5·24 조치가 나왔고, 개성공단은 2016년 문을 닫았다. 북한의 도발은 이 과정에서 빠질 수 없는 사실이다. 동시에 한국은 사업 하나를 중단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접촉을 뒷받침하던 제도와 인력, 민간의 관계망까지 함께 거둬들였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북정책의 범위와 속도도 크게 달라졌다. 다시 대화를 제안하는 정부가 나와도 북한은 그 제안이 몇 년짜리인지 묻게 된다. 한국 안에서는 "우리가 이만큼 했는데도 응하지 않았다"는 말이 성립할 수 있다. 상대와 주변국에는 그 약속이 오래 갈 것이라는 증명이 되지 않는다.
북한의 현재를 남북관계만으로 설명할 수도 없다. 북한 스스로 핵무력을 국가 노선으로 삼았고, 북미 협상은 무너졌으며, 제재와 미·중 경쟁, 북·러 협력은 한반도 바깥의 조건을 바꿨다. 그렇다고 한국의 정책 단절이 남긴 흔적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서독도 처음부터 동독과의 교류를 택한 것은 아니었다. 1969년까지 서독은 동독을 승인한 나라와 외교관계를 끊겠다는 할슈타인 원칙으로 동독을 고립시키려 했다. 브란트 정부의 동방정책 뒤 1971년 통과협정이 체결됐고, 1972년 기본조약, 1974년 상주대표부 설치로 이어졌다. 그 뒤 교통·통신·경제 협력의 통로가 하나씩 생겼다.
보건 분야도 그 통로 안에 있었다. 서독은 동독에 의약품과 의료 소모품, 의료기술과 구급차 등을 지원했고, 투석 치료와 중환자 치료에도 협력했다. 동독은 가난한 농업국이 아니었다. 공업국으로서 자체 의료체계를 갖고 있었지만 외화난과 장비·의약품 부족을 안고 있었다. 서독의 지원은 동독을 가난하게 붙잡아 두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분단 아래 끊어지지 않는 접점을 만드는 정책이었다.
그 교류가 독일 통일을 만들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소련의 변화와 동독 시민들의 움직임이 결정적이었다. 그래도 정치 환경이 바뀌었을 때 양쪽에는 이미 왕래와 협상을 위한 창구가 남아 있었다.
중국과 대만의 관계도 단순한 부유함의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1979년 중국은 대만에 통우·통상·통항, 이른바 삼통을 제안했다. 당시 대만은 중국보다 훨씬 부유했지만 장징궈 정부는 접촉·협상·타협을 거부하는 삼불정책으로 맞섰다. 1987년이 되어서야 본토에 가족을 둔 사람들의 친족 방문을 허용했다.
중국의 통일론을 본받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 제안은 중국의 통일전선 전략과 분리할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사실은 남는다. 상대가 더 잘살고 당장 응하지 않는다고 해서 교류를 먼저 제안한 쪽이 손을 거둔 것은 아니었다. 평화를 준비하는 쪽은 상대의 궁핍이나 감사에 기대지 않는다.
강동군병원 지원안도 마찬가지다. 북한이 수령을 거부하면 장비는 가지 않는다. 받겠다고 해도 품목·운송·사용 확인을 놓고 협의해야 한다. 제재 면제를 받아 두고 필요한 장비를 추려 놓는 일은 무조건적인 선물이 아니다. 언젠가 협의가 가능해질 때 쓸 수 있는 통로를 준비하는 일이다.
'퍼주기'라는 말은 북한에 얼마를 건넸느냐만 묻는다. 더 중요한 질문은 한국이 정권과 사건이 바뀔 때마다 그 통로를 왜 끊어 왔느냐에 있다. 북한이 응답하지 않는다고 해서 준비까지 멈출 이유는 없다. 강동군병원 지원 논란은 바로 그 준비를 계속할 나라가 한국인지 묻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