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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메이커' 통일부, 북핵의 무엇부터 묶을 건가
통일부의 북핵 고도화 중단 구상을 검토하며, 대화 성사에 앞서 제한할 핵 활동과 검증 절차, 상응 조치를 구체화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17일 오전 김여정 노동당 부장이 먼저 입장을 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북한 비핵화를 다시 확인한 데 대해,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는 되돌릴 수 없고 법적으로 영구히 고착됐다고 주장했다. 몇 시간 뒤 연합뉴스가 전한 통일부의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현안보고에는 한반도의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논의를 통해 북핵 능력 고도화를 중단할 실효적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대목이 담겼다.
두 발언은 서로를 겨냥한 공식 답변은 아니다. 김여정 담화의 상대는 IAEA였고, 통일부가 그 담화를 두고 보고했다는 증거도 없다. 그러나 한쪽이 핵보유 지위의 고착을 말한 날, 다른 쪽이 '고도화 중단'을 꺼냈다. 그래서 물어야 할 것은 간단하다. 통일부가 멈추겠다는 대상은 무엇이며, 그 중단 여부를 어떤 절차로 판별하겠다는 것인가.
비핵화라는 장기 목표와 별도로, 당장 추가 핵개발에 제동을 거는 과제를 꺼내는 일은 필요하다. 이미 보유한 핵과 앞으로 늘어날 핵물질·무기화 능력은 협상에서 각각 다른 층위로 다뤄야 한다. 하지만 공개 보도로 확인되는 범위에서 통일부 보고에는 중단의 범위, 검증의 주체와 방식, 그 대가로 검토할 조치가 보이지 않는다. '핵능력 고도화 중단'은 아직 목표를 가리키는 표현에 머물러 있다.
김여정이 쓴 '법적 고착'은 북한 국내 법체계에서 핵 지위를 고정했다는 자기 규정이다. 그 말로 북한이 국제법이나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에서 핵무기국으로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선언의 무게는 가볍지 않다. 북한이 이미 확보한 핵능력을 이후 협상의 출발점으로 삼겠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IAEA는 최근 영변의 새 우라늄농축 시설과 강선 일대의 활동을 지적했다. 2009년 이후 현장 사찰이 막힌 상태에서 나온 평가라는 점도 중요하다. 지금의 문제는 선언의 수사보다 핵 관련 능력이 실제로 계속 쌓이고 있다는 데 있다.
최근 북한의 설명은 한미의 대량살상무기 대응 협의와 핵·미사일 논의를 미국과 동맹의 적대적 군사태세로 묶는다. IAEA의 비핵화 요구도 그 틀 안에서 외부의 부당한 판정으로 돌려세운다. 그 결과 대응과 검증의 요구는 북한 담화 안에서 다시 핵 증강의 근거로 되돌아간다.
북미 접촉의 가능성은 남아 있다. 북한은 한국과의 대화에는 차단선을 세웠지만, 대미 메시지에는 접촉의 여지를 남겨 두고 있다. 회담이 열려도 곧바로 합의나 이행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러시아와의 협력을 넓히고 중국과 관계를 유지하는 북한에 북미 회담은 여러 선택지 중 하나일 뿐이다. 그래서 회담 성사, 합의, 이행은 따로 따져야 한다.
통일부가 찾을 수 있는 아주 좁은 틈은 이렇다. 북한의 핵보유국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되, 이미 작동 중인 핵 생산과 무기화의 다음 단계를 늦추거나 멈추는 일이다. 전면 비핵화보다 낮은 목표지만, 실효성을 말하려면 측정하고 검증할 수 있는 약속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 지점에서 통일부 보고의 빈칸이 커진다. 북한의 핵보유국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추가 농축·재처리와 핵탄두 생산 가운데 무엇을 우선 제한할지는 협상 의제로 세울 수 있다. 그러려면 중단 기준을 활동과 수치로 특정하고, 누가 어떤 자료와 현장 접근권을 갖게 할지, 북한에 무엇을 제공할지까지 함께 제시해야 한다. 그 일을 정하지 않은 채 평화체제를 먼저 말하면, 핵보유 지위를 어떻게 다룰지와 추가 핵생산을 어디까지 제한할지가 한 문장 안에 뒤섞인다.
평화체제 논의도 필요하다. 군사적 긴장완화와 관계 관리가 핵 문제와 따로 움직일 수 없다는 점도 분명하다. 다만 중단 대상과 확인 방법이 빠진 평화체제 논의는 핵 활동을 제한하는 실질 의제와 분리된 채 진행될 위험이 크다.
통일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연합연습 축소 결정을 북미대화 재개의 기회로 봤다. 이어 '페이스메이커' 역할로 북미대화 성사를 지원하고, 그 동력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다자간 대화로 잇겠다고 보고했다. 또 북한이 우리의 대북 동향을 주시하며 한국의 북미대화 관여 가능성을 견제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통일부 자신의 평가대로라면, 한국의 참여 자체를 목표로 삼는 접근은 약해진다. 한국이 대화에 실을 첫 요구의 내용이 더 중요해지는 이유다.
그러므로 페이스메이커의 역할은 북미대화의 주변에 한국의 자리를 만드는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대화가 열릴 경우 한국이 내놓을 첫 요구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 순서가 빠진 평화체제 논의는 북한의 핵보유 인정을 피하면서도 추가 확장을 막지 못한다. 김여정의 '핵보유국' 선언 앞에서 통일부에 필요한 건 낙관이 아니다. 무엇을 먼저 묶을지, 그 순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