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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기고 / NA:NNAL STORIES

[주장] 국민 보호는 그대로였다, 바뀐 건 트럼프의 압박뿐

정부의 호르무즈 대응 표현이 미국의 압박에 따라 바뀐 과정을 추적하고, 국민 보호의 명분과 군사작전 참여의 위험을 따집니다.

정부가 호르무즈 해협에 병력과 군사자산을 파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지난 3일 잇따랐다. 해상초계기와 군수지원함, 기뢰 제거 전력이 후보로 거론되고, 이르면 한두 달 안에 국회 동의를 거쳐 파병한다는 시간표까지 흘러나왔다. 청와대는 그날 밤 "'파병 가닥'이라는 일부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라며 "관련된 사안은 결정된 바 없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무엇이 정부를 여기까지 밀고 왔는지는 정부가 쓴 단어에 이미 적혀 있다.

미국의 시간표에 맞춰 결정

정부는 오랫동안 '실질적 기여'라는 표현을 썼다. 이 말이 '군사적 기여'로 바뀐 날짜는 특정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16일 한미연합연습 '을지 자유의 방패' 축소를 지시하며 한국의 대이란 대응에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했다. 정부는 바로 다음 날 "군사적 기여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루 만에 표현의 수위가 격상됐다. 거슬러 올라가면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호르무즈 역할을 처음 요구한 것은 3월 14일이다.

이 날짜들을 나란히 놓으면 한 가지가 분명해진다. 정부가 내세우는 명분, 곧 '우리 선박과 국민을 지킨다'는 목적은 3월부터 9월까지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바뀐 것은 표현의 수위뿐이고, 그 수위는 미국의 요구와 불만에 정확히 맞춰 올라갔다. 명분이 고정된 채 표현만 워싱턴을 따라 움직였다면, 이 파병을 실제로 추동하는 동력은 국민 보호가 아니라 동맹의 압박이라고 보아야 한다. 필자가 이 파병에 반대하는 이유의 핵심이 여기에 있다. 우리 장병의 생명이 걸린 파견을 우리의 판단이 아니라 미국의 시간표에 맞춰 결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명분과 실제의 간극은 파병의 내용에서도 확인된다. 정부는 '우리 배를 지키러 간다'고 하지만, 거론되는 전력은 민간 선박 호위를 넘어선다. 해상초계기는 위협 세력의 잠수함과 수상함을 감시하고, 기뢰 제거 인력은 외국 해군과의 연합 작전에 투입된다. 이런 전력이 현지 작전에 편입되면 한국은 선박을 지키는 국가가 아니라 군사 작전의 당사국이 된다. 보호하러 간 자산이 오히려 우리 장병과 교민, 선박을 보복과 우발적 교전의 표적으로 만든다. 국민 보호라는 명분이 국민을 위험에 세우는 것이다.

우리가 정하지 못하는 끝

미국의 압박에 끌려가는 결정이 위험한 또 하나의 이유는 그 끝을 우리가 정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미국은 이미 중동 파병 부대의 체류 기간을 연장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두 달짜리 기여로 시작한 파견이 언제 끝날지, 임무가 어디까지 확대될지는 파병을 요청한 쪽의 사정에 달리게 된다. 동맹의 요구를 검토하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요구의 수위에 맞춰 우리 표현을, 다음엔 우리 군대를 내어주기 시작하면, 그것은 국익을 위한 결정이 아니라 국익을 내주는 결정이 된다.

그래서 정부가 서둘러 밟으려는 절차도 경계해야 한다. 헌법 제60조는 국군의 외국 파견에 국회 동의를 요구한다. 그런데 신규 부대 편성 대신 아덴만의 청해부대 작전구역만 넓히면 별도 동의 없이 호르무즈에 투입할 수 있다는 우회로가 거론된다. 실제로 청해부대의 작전 지역이 국회의 온전한 동의 없이 확대된 전례가 있다. 미국의 요구에 맞춰 표현을 바꿔 온 정부가 국회 동의마저 부드러운 명칭으로 건너뛴다면, 파병의 실질은 국민의 대표가 따질 기회조차 없이 결정된다. 판단의 기준은 '파병'이냐 '기여'냐가 아니라 한국군이 어디서 누구의 지휘를 받아 무슨 임무를 수행하느냐다.

잃는 것은 중동에 국한하지 않는다

이 결정이 미국의 시간표를 따를 때 잃는 것은 중동에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군이 대이란 작전에 엮이면 이란은 한국을 새로운 군사적 상대로 인식하고, 중국·러시아와의 외교 공간도 좁아진다. 북한에는 더 직접적이다. 북한은 지난 2월 노동당 규약에서 '조국통일' 강령을 삭제하고 대한민국을 별개의 적대 국가로 규정하며, 대남 군사문제를 국가 간 안보 문제로 옮겨놓았다. 이 구도에서 한국이 미국의 중동 군사행동에 결합하는 모습은 북한이 대남 적대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된다. 미국의 요구를 좇아 중동으로 간 군대가, 정작 한반도에서 우리가 요구할 대화의 명분을 깎아내리는 것이다.

정부는 결정을 내리기 전에 답해야 한다. 3월부터 지금까지 명분은 그대로인데 표현만 미국의 압박을 따라 올라간 이유가 무엇인지, 지금까지 군사적 기여를 어느 수준까지 검토했는지 국민과 국회에 밝혀야 한다. 청해부대 작전구역 확대 같은 우회로는 쓰지 않겠다고 분명히 해야 한다. 국회도 동의안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상임위를 열어 검토 경위부터 확인해야 한다.

국민을 지키는 길은 미국의 요구에 군함으로 답하는 데 있지 않다. 정부가 우선할 일은 중동의 긴장을 낮추기 위한 외교와 민간 선박 안전대책이다. "결정된 바 없다"는 해명은 이제 충분하다. 명분이 정말 국민 보호라면, 정부는 미국의 시간표가 아니라 국민 앞에서, 호르무즈의 군사작전에 한국군을 보내지 않겠다고 지금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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