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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 APEC 계기 북미회담? 트럼프-김정은의 기념사진보다 중요한 것
선전 APEC을 계기로 거론된 북미회담을 성사와 이행의 문제로 나눠 보고, 핵 검증과 제재 조정에 한국의 안전이 담겨야 한다고 짚습니다.
지난해 가을에도 비슷한 기대가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국을 방문하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날 수 있다는 전망이었다. 그러나 북미 간 접촉 징후는 끝내 확인되지 않았고 회담도 열리지 않았다.
올해는 신호가 더 많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안에 김 위원장을 만나고 싶다는 뜻을 밝혔고, 한미연합훈련 축소를 지시했다. 2019년 판문점 회동 사진까지 다시 꺼냈다. 오는 11월 중국 선전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가 자연스럽게 네 번째 북미 정상회담의 무대로 거론되는 이유다.
북한의 답도 단순한 거절은 아니었다.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장은 훈련 축소에 "전혀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고 했고 최근 북미 정상 간 소통설도 사실상 부인했다. 그러면서도 두 정상의 관계는 "의연 훌륭하다"고 했다. 그 직후 북한은 단거리탄도미사일 10여 발을 발사했다.
훈련 축소를 협상 카드로 인정하지 않고 현재의 접촉도 부인하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사이의 개인적 관계만 남겼다. 문은 열지 않았지만 문고리까지 떼지는 않은 셈이다.
여기서 북미회담을 둘러싼 두 개의 연합을 구분해야 한다.
하나는 '회담 연합'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결심, 그리고 개최국 중국의 장소와 의전 지원이 있으면 깜짝 만남은 가능하다. 북한은 APEC 회원이 아니므로 김 위원장의 선전 방문에는 중국의 별도 초청이 필요하겠지만,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다른 하나는 '이행 연합'이다. 합의를 실행하려면 미국 국무부와 재무부, 국방부와 의회가 움직여야 한다. 핵시설을 검증하려면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필요하다. 유엔 제재를 조정하려면 안전보장이사회와 중국·러시아의 협조가 필요하다. 군사태세와 경제·에너지 지원이 거래에 포함된다면 한국과 일본도 빠질 수 없다.
회담은 두 정상이 결심하면 열 수 있다. 그러나 합의의 성패는 회담장 밖에 있는 훨씬 많은 행위자에게 달려 있다. 따라서 11월 전망도 세 질문으로 나눠야 한다.
두 정상이 만날 것인가. 만나서 합의할 수 있는가. 그 합의를 실제로 이행할 수 있는가.
첫 번째 질문의 답은 두 정상의 의지에 크게 좌우된다. 두 번째부터는 사정이 달라지고, 세 번째에 이르면 두 사람만으로는 답을 만들 수 없다.
2018년과 2026년, 무엇이 다른가
2018년과 지금의 차이도 여기서 시작된다.
당시 북한은 국제제재가 강화되는 가운데 경제발전을 위해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필요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전임 행정부들이 해결하지 못한 북핵 문제를 정상외교로 돌파하려 했다. 원하는 내용은 달랐지만 정상회담이 필요하다는 이해관계는 맞았다.
지금은 두 정상의 필요가 같은 속도로 익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미회담은 중동전쟁과 국내 정치의 부담 속에서 내세울 수 있는 외교적 성과다. 반면 북한은 2018년보다 많은 핵물질과 다양한 투발수단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되고, 중국·러시아와의 관계도 깊어졌다. 제재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미국과의 합의가 없으면 당장 버티기 어려운 상황도 아니다.
한쪽의 협상 필요는 빠르게 커지는데 다른 쪽의 필요는 그만큼 커지지 않는 '비대칭적 성숙'이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훈련 축소를 먼저 제시하면 평양은 워싱턴이 회담을 더 필요로 한다고 판단해 다음 가격을 높일 수 있다. 김여정 부장이 훈련 축소를 미국의 '선의'로 인정하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의 양보로 장부에 올리는 순간 북한에도 상응 조치를 내놓을 차례가 돌아오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가격을 트럼프 대통령 혼자 지급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북제재는 미국 대통령이 혼자 켜고 끌 수 있는 하나의 스위치가 아니다. 대통령은 행정명령에 근거한 제재를 조정하고 법이 허용한 일부 제재에 한시적·갱신형 면제를 적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의회가 법률로 만든 제재 가운데는 대통령의 권한이 제한되거나 일정한 조건 충족을 요구하는 것도 있다.
유엔 대북제재는 미국 대통령의 명령으로 없앨 수 없다. 개별 예외 승인도 15개국으로 구성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의 합의가 필요하고, 제재 체계 자체를 바꾸려면 안보리 차원의 결정이 뒤따라야 한다.
이 구조가 중요한 이유는 간단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장에서 자신이 실제로 집행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약속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 의회와 유엔이 움직이지 않으면 북한은 약속받은 대가를 받지 못한다. 반대로 북한의 이행을 확인할 검증 장치가 없다면 미국도 장기적인 제재 완화를 유지하기 어렵다.
핵동결도 마찬가지다.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를 중단했는지는 밖에서 관찰할 수 있다. 핵물질을 더 만들지 않는지는 시설 안으로 들어가야 확인할 수 있다. 정상의 명령만으로 가능한 시험 유예와 국제사찰이 필요한 핵물질 생산 동결은 다른 거래다.
북한은 2009년 4월 IAEA 사찰단을 내보낸 이후 국제사찰을 받지 않고 있다. 핵·미사일 시험을 유예해도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생산이 계속된다면 핵탄두를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은 늘어날 수 있다.
영변 핵시설 동결은 중요한 출발점이지만 그것만으로 전체 핵프로그램을 묶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영변 밖의 미신고 시설 의혹이 오랫동안 제기돼 왔기 때문이다. 북한이 무엇을 신고할지, 사찰단이 어디까지 접근할지, 합의 위반이 발견되면 어떻게 대응할지를 함께 정해야 한다.
과거 합의들은 세부사항을 뒤로 미뤘을 때 어떤 일이 생기는지 보여준다.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는 북한의 플루토늄 생산시설을 상당 기간 동결했다. 그러나 대가로 약속한 중유와 경수로 사업에는 미국 의회와 한국·일본 등이 참여해야 했다. 합의 뒤에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별도로 만들어진 것도 두 나라의 약속만으로 사업을 집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2012년 '윤달 합의'는 장거리미사일 발사 유예에 위성 발사가 포함되는지를 명확히 정하지 못해 몇 주 만에 무너졌다. 2018년 싱가포르 공동성명은 북미관계와 평화체제, 비핵화의 방향은 제시했지만 핵 신고의 범위와 시간표, 검증 방법, 제재 완화 순서를 남겨뒀다.
그 공백은 2019년 하노이에서 돌아왔다. 북한이 내놓을 영변의 범위와 미국이 해제할 제재의 범위가 실무선에서 정리되지 않은 채 정상회담 의제로 올라갔다. 두 정상은 거래의 가격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회담장에서 확인하고 합의문 없이 돌아섰다.
11월 선전에서 만나게 된다면, 과거와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최소한 네 가지가 먼저 보여야 한다.
첫째, 시험 유예의 범위다.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만 포함하는지, 위성 발사와 로켓엔진 시험도 포함하는지 명확해야 한다. '평화적 우주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이뤄지는 탄도미사일 기술 시험을 어떻게 다룰지도 적어야 한다.
둘째, 핵물질 생산 동결이다. 이미 만든 핵무기의 폐기까지 한 번에 합의하기 어렵다면 우선 핵물질 총량이 더 늘어나지 않게 해야 한다. 영변에서 시작하더라도 다른 시설의 신고와 검증으로 이어지는 시간표가 필요하다.
셋째, 신고·접근·위반 시 조치를 잇는 검증구조다. 북한이 시설과 물질을 신고하고, 사찰단이 합의된 장소에 접근하며, 중대한 누락이나 위반이 발견되면 제재와 상응 조치를 어떻게 되돌릴지 정해야 한다.
넷째, 북한의 조치와 미국의 보상은 비슷한 정도로 되돌릴 수 있어야 한다. 북한이 시험과 생산을 일시 중단한다면 미국도 한시적인 제재 면제나 군사조정을 제공할 수 있다. 북한이 시설 해체나 핵물질 반출처럼 되돌리기 어려운 조치를 한다면 미국도 지속 가능한 제재 완화와 관계 정상화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여기에 한국이 물어야 할 다섯 번째 질문이 있다.
누구의 안전을 위한 합의인가.
북한이 미국 본토에 도달할 대륙간탄도미사일만 제한하고 단거리탄도미사일과 전술핵무기를 그대로 남겨둔다면 미국에는 성과가 될 수 있지만 한국의 위험은 크게 줄지 않는다. 북미가 한국과 협의하지 않은 채 한미연합훈련이나 주한미군 태세를 조정하고, 합의 이행에 필요한 경제·에너지 비용만 한국에 요구하는 거래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한국 정부가 북미회담의 '페이스메이커'를 자처한다면 회담 개최를 돕는 데서 역할을 끝내서는 안 된다. 북한의 어떤 핵·미사일이 동결되는지, 한국의 안보에 영향을 미칠 군사조치는 어떻게 협의하는지, 한국이 부담할 비용에 상응하는 권한은 무엇인지 이행표 안에 넣어야 한다.
현재 공개된 신호만 보면 북미회담의 가능성은 닫히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만나고 싶다는 뜻을 밝혔고 북한도 두 정상의 개인적 관계까지 부정하지는 않았다. 중국 역시 북미대화에 반대할 이유가 없고 장소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김 위원장의 선전 방문이나 중국의 별도 초청은 확인되지 않았다. 북미 실무접촉과 의제 조율도 공개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북한이 무엇을 신고하고 미국이 어떤 제재를 풀 것인지, 사찰단이 언제 어디로 들어갈지에 관한 이행 설계도 보이지 않는다.
가장 위험한 결과는 회담이 무산되는 것이 아니다. 미국 본토의 위험만 묶고 한국의 위험과 비용은 남겨둔 합의를 두 정상이 성공이라고 발표하는 것이다.
11월 선전에서의 만남이 이뤄진다면 봐야 할 것은 두 사람의 악수가 아니라, 그 악수 뒤에 붙은 이행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