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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기고 / NA:NNAL STORIES

남측은 평화공존, 북측은 자력강국… 하나의 해방에서 갈라진 두 국가의 미래

광복절 남북의 공식 메시지를 비교해, 공유된 해방의 기억이 서로 다른 국가 발전 구상으로 이어지고 평화공존의 조건도 달라진 상황을 읽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제81주년 광복절 경축사와 같은 날 북한이 발표한 노동신문 사설을 나란히 놓으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공백이 있다. 이 대통령의 경축사에서 '통일'은 흡수통일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대목에 한 차례 등장한다. 노동신문 사설과 조선중앙통신 기사에는 통일도, 남한도 등장하지 않는다. 두 문서 어디에도 '통일·남조선·남한·북남'이라는 표현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단어 하나가 빠졌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남북이 광복 이후 81년을 설명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졌다는 의미다. 같은 1945년 8월 15일에서 출발하지만, 두 문서가 도착하는 현재와 향하는 미래는 더 이상 하나가 아니다.

이 대통령의 경축사는 광복 당시에는 하나였던 민족을 불러낸다. 독립운동가들은 "한라에서 백두까지" 하나의 함성을 만들었고, 신분과 계층, 좌우의 차이도 나라를 되찾겠다는 의지 앞에서는 문제 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현재와 미래를 말하는 순간 주어가 달라진다. 하나였던 민족은 "남과 북"이라는 두 정치적 실체가 되고, 앞으로의 과제는 통일이 아니라 평화공존으로 제시된다. 서로의 체제를 존중하고 적대성을 줄이는 포용적 평화공존, 위기와 확전을 막는 안정적 평화공존,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와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책임 있는 평화공존이다.

북한의 서술은 출발점부터 다르다. 노동신문은 광복을 한민족 전체의 해방이 아니라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으로 탄생한 북한 국가의 기원으로 재구성했다. 광복 이후의 역사 역시 분단과 통일의 역사가 아니다. "자력, 자강의 억센 힘"으로 북한이 자기식 번영을 이뤄온 국가 건설의 역사다.

남한이 공유된 민족의 과거에서 출발해 두 국가의 공존으로 이동했다면, 북한은 과거의 광복까지 북한이라는 국가의 독자적인 역사로 편입한 셈이다. 남북이 갈라진 것은 미래만이 아니다. 1945년을 기억하는 주체까지 갈라지고 있다.

오히려 두 문서는 닮은 대목에서 갈라진다.

이 대통령은 지난 81년을 산업화와 민주화, 방산과 문화의 힘을 키워 "대체 불가 대한민국"으로 성장해온 역사라고 규정했다. 북한도 지난 81년을 자력과 자강을 통해 "세계가 경탄하는 강대한 나라"를 건설해온 과정으로 설명했다. 남북 모두 광복을 빼앗겼던 주권을 되찾은 날로 기억하고, 이후의 역사를 다시는 나라를 빼앗기지 않을 힘을 축적해온 과정으로 서술한다.

차이는 국가의 힘을 만드는 방법에 있다.

남측 경축사에서 대한민국의 번영은 다른 국가와의 관계 속에서 완성된다. 세계가 필요로 하고 모든 나라가 협력하고 싶어 하는 국가가 되어야 하며,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세계질서가 경제성장을 뒷받침해야 한다. 북한과는 평화공존의 제도를 만들고, 일본과는 과거의 상처를 직시하면서도 "평화와 번영의 새로운 60년"을 열어가자고 했다.

남측이 제시한 것은 관계를 통해 안전과 번영을 확대하는 국가다. 한반도의 긴장을 낮추는 일이 대한민국의 성장 가능성을 넓히고, 한일 협력이 국익을 키우며, 한반도 평화가 동북아와 세계 평화로 이어진다는 구조다. 평화는 도덕적 당위에 그치지 않고 국가 발전을 위한 조건으로 배치됐다.

북한은 정반대의 인과관계를 제시한다. 외세에 의존했기 때문에 나라를 빼앗겼고, 다시는 같은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자신의 힘만으로 국가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말하는 자력과 자강은 경제 건설의 구호만이 아니다. 외부와의 관계에 국가의 생존을 맡기지 않겠다는 주권관이자 안보관이다. 평화로운 질서가 국가의 힘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꺾을 수 없는 힘을 가져야 존엄과 번영을 지킬 수 있다는 논리다.

남북의 8·15 담론은 그래서 '평화 대 대결'이라는 단순한 구도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양측 모두 강한 국가와 번영하는 미래를 말한다. 다만 남측은 협력할 수 있기 때문에 강한 나라를, 북측은 의존하지 않아야 강한 나라를 만들 수 있다고 본다. 같은 식민지 경험에서 서로 다른 생존의 교훈을 끌어낸 것이다.

이 차이는 이 대통령이 제시한 평화공존 구상의 난점도 보여준다. 평화공존은 당장 통일을 실현하지 못하더라도 남북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관계를 관리하자는 제안이다. 적대성을 줄이고, 군사적 긴장을 통제할 제도를 만들며,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려면 최소한 상대를 협의의 당사자로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북한의 광복절 사설에는 관계를 맺어야 할 남한 자체가 없다. 남측이 말하는 평화공존은 두 국가 사이의 안정적인 관계를 필요로 하지만, 북한이 내세우는 자력의 국가는 남한과의 관계 없이도 완결될 수 있다. 북한의 침묵은 아직 남측의 평화 제안에 답하지 않았다는 차원을 넘어, 남측을 자신의 미래 구상에 포함하지 않고 있다는 신호에 가깝다.

이 점에서 올해 경축사의 세 가지 평화공존은 단순한 대북 유화 메시지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직전 정부가 2024년 광복절에 발표한 '8·15 통일 독트린'은 "자유민주 통일 국가가 만들어지는 그날 비로소 완전한 광복이 실현된다"고 선언했다. 그로부터 2년 만에 국가 기념사의 무게중심이 '어떤 통일을 할 것인가'에서 '분단된 두 국가가 어떻게 전쟁을 피할 것인가'로 이동한 것이다.

이는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 노선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뜻은 아니다. 남측은 여전히 한라에서 백두까지 이어진 공동의 역사와 남북의 공동 성장을 말한다. 다만 통일을 먼저 말하기보다 평화공존을 제도화하고, 그 위에서 관계의 가능성을 다시 만들겠다는 순서로 바뀌었다.

물론 노동신문 사설과 조선중앙통신 기사는 북한 주민을 대상으로 한 대내용 문헌이다. 대남 메시지를 별도로 내는 북한의 관행을 고려하면, 남측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북한의 대남전략 전체를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제9차 노동당대회에서 적대적 두 국가 노선이 재확인되고 당규약의 통일 관련 조항도 삭제된 것으로 분석되는 상황과 겹쳐 놓으면, 이번 침묵을 우연한 생략으로만 보기도 어렵다.

문제는 남측만 관계를 상상하고 있다는 데 있다. 남측은 하나였던 과거를 기억하면서 두 국가의 평화로운 미래를 제안한다. 반면 북측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자기 국가의 역사로 닫아버렸다.

광복 81주년 남북의 메시지가 보여준 것은 평화와 국력이라는 두 단어의 차이만이 아니다. 남북이 더 이상 광복 이후를 하나의 역사로 설명하지 않고 있다는 변화다. 같은 날을 기념했지만 남측은 분단을 공존으로 바꿀 방법을 말했고, 북측은 분단된 상태에서 스스로 강해진 역사를 말했다.

남측이 건넨 말은 평화공존이었다. 그러나 북측의 문장에는 그 말에 답해야 할 남측이 처음부터 등장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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